바다교회 김황식 장로, 공인이기 전에 그리스도인 사명 감당 '눈에 띄네'

선교

HOME교계뉴스선교 


바다교회 김황식 장로, 공인이기 전에 그리스도인 사명 감당 '눈에 띄네'
스타필드유치-미사신도시조성추진-지하철유치 등 괄목적 하남발전 추진

페이지 정보

교회신보 기자 작성일21-07-22 14:38

본문


3119aaa9fb90f87ecb6c397f1a07dd7f_1626932181_4351.png

▲바다교회 김황식 장로

하남시의 교회·목사들을 전적으로 후원하고, 관내 예배문화 활성화, 청소년회관을 통한 다음 세대 선교 문화를 주도한 인물이 있어 화제다.

김황식 장로(하남 바다교회)는 16대 국회의원과 민선4기 하남시장을 역임하며 하남시에 하나님 나라를 만들고, 지역사회를 주도해 믿는 사람으로서의 사명을 감당해왔다.

팔당댐부터 이어진 하남시에는 무속인들이 많이 포진돼 있다. 산책하면서 하남시를 돌아다녀 보면, 불 켜놓고 목탁을 두들기는 사람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이를 통해 김 장로는 하남 땅 위에서 그리스도에 반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음에 주목했다. 사명이라는 것은 그리스도에 반대되는 것들에 맞서는 것이다. 그는 시장직에 올라서도 그리스도인의 사명을 잘 감당하리라 다짐했다.

“시장이 되고 제일 먼저 한 것이 있습니다. 목사님들이 체육대회를 하는데 시에서 지원이 되느냐 누군가 제게 조심스레 물었습니다. 시에서는 이들에게 금전적 지원을 해줄 순 없습니다. 따라서 하남시 전체 목사 체육대회에 작게나마 유니폼을 후원했습니다”

이는 시 지역 전체에 복음을 심는 계기가 됐다. 하남 시장이 교회를 다니므로 공무원들이 목사님들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김 장로는 한 달에 한 번씩 드려지는 신우회를 통해 지역 목사를 초청해 설교하게 함으로, 관내 예배문화를 활성화시켰다. 또한 하남 문화예술회관이 처음으로 개관했을 때, 그는 하나님께 제일 먼저 영광을 돌리고자 했다. 메시아 공연을 필두로 개막식을 거행한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관내 목사들의 후원으로 성가대원들 300명, 오케스트라 단원 50명을 지원받아 공연했다. 이와 함께 김 장로는 청소년들에게 전도할 수 있는 청소년기독교회관을 만들어 다음 세대를 향한 선교 문화를 주도하려 애썼다. 직접적인 실행은 무산됐지만 안 믿는 자들도 간접적으로 하나님을 느끼게끔 복음화에 앞장섰다.

사명을 충실히 감당했던 김 장로에게도 몇 번의 고비가 있었다. 그가 광역 화장장 유치사업으로 인해 주민소환을 겪었을 때, 그의 집에는 온갖 무당들이 찾아와 저주를 퍼붓기도 했다.

“제가 주민소환을 당했을 당시, 이건 영적인 싸움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무렵 사택을 이전하게 됐는데 종교적인 이유만으로 불만 갖던 무속인들이 찾아와 살림살이에 소금을 뿌리고, 막걸리를 부어댔습니다. 그 뒤로 개발제한구역 인허가 비리에 휩쓸려 교도소에 가야 했을 때는 정말 많이 억울했습니다. 내일 일도, 한치 앞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교도소 안에서 기도를 수없이 했다. 사익보다 공익을 위해 일해왔음은 오로지 하나님께서만 아신다고 생각했다. 그가 아시니 그가 이 모든 걸 해결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더 굳건해졌다. 김 장로는 교도소를 통해 오히려 신앙이 더 깊어졌고,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을 갖게 됐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열심히 기도하는 자의 손을 들어 주셨다. 2심에서 정확한 증거가 발견돼 무죄 판결을 받은 것이다.

특히 하남시에서 LH 투기 사건이 불거졌을 때, 김 장로가 지켜온 청렴함은 빛을 발했다.

바다교회 담임 서주원 목사는 “우리 바다교회 김황식 장로님은 하남에 든든한 기반을 많이 세웠지만, 하남에 집 한 채 땅 한평 없습니다. 깨끗하고 청렴한 지도자 김 장로님이 새삼 존경스럽습니다. 코로나로 인하여 집사들도 교회에 안 나오고 여러 성도들이 교회를 떠났지만 우리 김 장로님은 현장 예배에 한 번도 빠진 적이 없었습니다. 매 주일날 한 시간 일찍 나와 예배를 준비하며 수입이 없어도 매달 50만 원 이상의 십일조를 주님께 드립니다”고 말했다.

김 장로는 시장 재임 시절, 해외 출장 중에도 서 목사에게 예배 자료를 받아 있는 자리에서 예배를 드렸다. 근처에 현지 교회가 있다면 그들이 어떤 언어를 쓰든 반드시 현장 예배에 출석해 주일 성수를 지켰다.

“제가 좀 강하죠, 하나님 믿으면서 누군가가 말씀대로 잘 살았냐 묻는다면, 저는 인간으로서 죄를 많이 지었기 때문에 자신할 수 없을 겁니다. 그나마 하나님 보시기에 십계명 아래서 세상과 타협 없는 기쁜 일들을 감당해왔기 때문에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정치인이기 이전에 하남시 전체 복음화를 선도해 하나님 나라를 위해 힘쓴 김 장로의 말이다. 시 내 교회와 목사 후원, 지역센터 선교 문화 선도 등 지금까지 그가 아울러온 치열했던 모든 일들은 하남시에 복음 사명의 뿌리를 깊게 내려온 일들이었다. 이후에도 그리스도인의 사명을 잘 감당해갈 그의 행보를 기대한다.

김황식 장로는 1950년 경기도 광주군 (현 광주시)에서 태어났으며, 서울덕수초등학교, 서울경희고등학교, 성균관대학교 동대학원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증권감독원(현 금융감독원), 동양증권(현 유안타증권) 등에서 근무한 이력이 있다. 또한 경원전문대학 강사, 경동대학교 겸임교수 등을 역임했다.

김 장로는 2002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재보궐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경기도 하남시 선거구에 출마해 당선됐다. 이후 한나라당 중앙당 당기위원을 역임했으며, 2006년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경기도 하남시장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됐다. 2010년 6월까지 시장으로 재직한 바 있다.

3119aaa9fb90f87ecb6c397f1a07dd7f_1626932278_3653.png
​하남사랑카드기금으로 불우이웃돕기, 장학기금 등 후원

Category
Facebook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