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을 바라보는 한국교회, 그리고 통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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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을 바라보는 한국교회, 그리고 통일
헌신한 믿음의 선조들 기억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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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신보 기자 작성일21-06-10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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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때 전장으로 향하는 국군장병들의 모습 

종교적인 목적 이전에 우리 역사를 보는 관점은 매우 중요하다. 한국 땅에서 사역한 외국 선교사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한국교회도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세브란스 병원은 초기에 루이스 헨리 세브란스(1838-1913)가 기부로 의료 선교 활동을 했고, 이후 병원을 설립한 선교사들이 병원 이름을 세브란스로 명명했다.

초기 선교사들은 일본 제국주의가 강제한 신사참배로 본국으로 귀환해야 했다. 그리고 해방 후 다시 들어온 선교사들은 6·25 전쟁 후에 고아, 구제 활동으로 우리 사회에 함께 했다. 그들은 사역했고, 우리의 사회에 근간이 되었다.

페기 빌링스 선교사(1928-2019)6·25전쟁 당시 선교사로 한국에 왔다. 휴전 직후 태화 복지관장을 맡아 전쟁고아와 빈민층을 위해 일한 그는 야학을 운영하고 전쟁 중 남편을 잃고 일터로 나선 여성들을 위한 직업상담소도 열었다.

1975년부터 1990년까지 15년간 북미 한국인권연합을 이끌며 한국의 민주화운동과 인권상황을 미국과 캐나다에 꾸준히 알렸다. 그가 북미 한국인권연합과 함께 5월의 참상을 최초로 세계에 알릴 수 있었던 이유다.

빌링스 선교사로 인해 전 세계 사람들은 충격적인 5·18의 참상을 알게 됐고, 수많은 이들이 광주에서 일어난 국가폭력 사태와 희생자를 위해 기도했다.

북미 한국인권연맹이 주최한 예배 후에도 그는 한국에 대한 미국 정부의 책임을 촉구하는 활동을 지속적으로 펼쳐왔다.

국내 선교사 또한 6·25 전쟁을 겪으며 한국의 복음 깃발을 높이 들었다.

1926년 평양에서 태어난 최찬영 선교사는 기독교 집안에서 성장하며 자연스레 신학교에 입학했다. 6·25전쟁이 터졌다. 최 선교사는 태평양전쟁부터 6·25전쟁까지 다 겪었다.

6·25전쟁 발발 초기엔 공산군에 잡혀가 죽을 고비를 넘겼고, 군목으로 사역하던 52년엔 타고 있던 트럭이 3m 절벽 아래로 굴렀다. 숱한 고비가 끝나니 예상치 못한 도전이 찾아왔다.

총회가 해방 후 첫 선교사를 태국에 보내기로 했는데 누군가 최 선교사 부부를 추천한 것이다. 최 선교사는 가족과의 상의 끝에 선교의 길은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19566월 태국에 도착한 최 선교사는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온 선교사라는 걸 실감했다. 당시 한국의 1인당 국민 총생산(GNP)66달러로 태국(139달러)의 절반에 못 미쳤다.

약소국 출신이라는 핸디캡을 넘어 최 선교사는 태국과 라오스의 성서공회를 거쳐 1978~92년까지 세계성서공회 아시아 태평양 지역 총무로 일하며 약 15억 권의 성서를 배포하는 데 기여했다.

기독교는 우리나라에 들어와 교회와 학교, 병원을 세워냈다. 특히 일제강점기 시절 교회마다 나라의 독립을 위해 기도했고, 생각치 못했던 8·15 광복이 이뤄졌다. 우리나라는 곧이어 일어난 6·25전쟁으로 암흑 속에 놓여졌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공산화를 막을 수 있었다. 전쟁이 끝난 뒤 남한에는 아무것도 없었지만, 교회마다 새벽기도 금식기도 철야기도를 했고 전국적으로 부흥회가 일어났다. 많은 젊은이가 선교사로 나간 결과 세계 2위 선교 대국이 될 수 있었다.

 

우리의 발자취인 과거를 기억하는 일은 현재를 잘 살아내는 방법이기도 하고 미래를 제대로 준비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과거에 대한 정확한 이해는 현재와 미래에 필수불가결한 과제이다. 과거를 잊은 나라에 미래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지금의 한국교회가 오기까지의 과정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되새김은 미래의 한국교회를 위해, 이 시대의 주역이 될 다음 세대를 위해 매우 중요하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우리민족 가운데 역사하신 크신 일들을 가르쳐야 한다. 특히 6.25 전쟁에 대해 가르쳐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대한민국에 자유를 선물로 주셨다. 현재 우리는 자유의 소중함을 잊고 있다. 교회는 6.25 전쟁의 역사를 통해 자유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헌신한 믿음의 선조들을 기억해야 한다.

북한 주민들이 김일성 동상 앞에서 진심으로 눈물을 흘리곤 했지만, 1990년대 이후부터 김일성을 신처럼 믿지 않기 시작했다. 하나님께서 친히 김일성 우상을 허무는 하나님의 선교를 하신 것이다.

믿음의 선조들을 믿지 않고 시대가 변하면서 젊은 세대에게는 통일의 당위성이 점점 희박해지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한국교회는 통일을 위해 시대적 사명을 가져야 한다.

먼저 분단 70년의 상처 봉합하고 새 시대를 열어갈 영적 동력을 마련해야 한다, 또한 한국교회 속의 갈등을 해결하고 국민 화합을 위한 화목제 역할을 도모해야 한다. 무엇보다 평화통일을 넘어선 복음통일로 온전한 하나 됨을 이뤄야 한다.

한 교계 지역 연합회는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평화의 바람을 일으키자는 취지로 ‘2021 피스 컨퍼런스를 진행한다.

이와 관련하여 6·25전쟁을 잊지 않고 70주년을 기념해 남북 지역 협력을 위한 국제 사회 및 교회의 역할이란 주제 아래 컨퍼런스가 진행됐다.

관계자는 복음통일의 사명을 감당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남북 지역에서 새로운 길이 열리면 남북한 전체에 새로운 길이 열릴 수 있다, “남북 강원도 사이의 협력을 만들어 내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평화의 바람을 일으키기 위한 구체적인 모임도 시작했다.

다음날에는 남북 지역 협력과 북한 동포를 위한 ‘2021 복음통일선교대회를 개최했다.

대회를 통해 관계자는 남북 지역 협력을 만들어 내는 일은 한반도와 세계 전체적인 변화를 만드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교계가 기도하면서 복음통일 중심에 서면 교착상태에 빠진 남북관계가 개선될 것이라고 전했다.

우리는 주어진 현실을 넘어 역사하시는 하나님께서 통일을 주실 것을 믿고 기도해야 한다. 무엇보다 나라를 위해 헌신했던 믿음의 선조들을 기억하며, 지금의 한국교회는 갈라선 우리의 조국을 위해, 교회를 위해, 내 이웃 형제자매를 위해 더 기도하고 섬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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