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생크 탈출과 입가나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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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생크 탈출과 입가나안
박병훈 목사, 유니온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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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신보 기자 작성일22-05-12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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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훈 목사, 유니온교회 


쇼생크 탈출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쇼생크라는 감옥에서 탈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출애굽의 구원역사를 의미하는 영화인 것을 아십니까? 쇼생크 탈출의 원 제목은 The Shawshank Redemption(쇼생크의 구원)입니다. 그러면 쇼생크가 의미하는 것은 단순한 감옥이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쇼생크는 이집트의 왕조의 이름입니다. 

셰숑크 1세(Shoshenq I, 기원전 943년 ~기원전 922년)는 고대 이집트 파라오이자 제22왕조의 초대 왕으로 구약성경에 따르면,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에 맞서 이스라엘 왕위 계승권에 도전한 여로보암을 지원하기 위해 BC 930년경 “이집트의 시삭 왕이 예루살렘을 침공했다”고 나와 있습니다.  

“르호보암 왕 제 오 년에 애굽 왕 시삭이 올라와서 예루살렘을 치고 여호와의 전의 보물과 왕궁의 보물을 몰수히 빼앗고 또 솔로몬의 만든 금방패를 다 빼앗은지라”(왕상14:25~26) 여기에 나오는 ‘시삭’이 바로 셰숑크 1세이며 쇼생크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쇼생크 감옥의 구원은 애굽이라는 감옥으로부터의 구원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출애굽입니다. 그러나 출애굽이 목적은 아닙니다. 목적은 입가나안입니다. 가나안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출애굽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의 삶을 거쳐야 합니다. 그 광야의 삶의 특징은 노예의 신분에서 자유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광야의 삶은 자유를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쇼생크 탈출의 주인공은 감옥 안에서 자유를 누리는 앤디이지만 그러나 정작 메시지는 레드라는 인물에게서 보입니다. 그는 가석방으로 풀려나와서 일자리를 얻게 됩니다. 일을 하면서 화장실을 가고 싶을 때 메니저에게 허락을 받습니다. 

그럴 때 메니저가 말합니다. ‘화장실 갈 때는 허락을 받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레드는 괴로워 하면서 혼자 말로 하기를 ‘나는 평생 허락을 받고 살았어’ , 그러면서 그 자유를 힘들어 합니다. 그리고는 권총 가게를 서성이며 ‘다시 감옥으로 돌아갈까’ 라고 하면서 힘들어 합니다. 

무엇이 힘든 것입니까? 자유가 힘든 것입니다. 자유가 왜 힘듭니까? 자유에는 권리와 책임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자유에는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정체성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감옥에서는, 노예 상태에서는 권리와 책임도 정체성도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면 광야에서 자유인이 된 이스라엘 백성들은 왜 불만일까요? 애굽이나 광야나 똑같이 먹고 마실 것이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먹고 마실 것을 주셨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다를까요? 애굽에서는 먹고 마실 것이 있었지만 노예였습니다. 광야에서도 먹고 마실 것이 있었지만 그들은 자유인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신분 곧 정체성이 달랐다는 것입니다. 노예에게는 자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제 출애굽한 광야에서는 자유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으로, 곧 노예상태로 돌아가자라고 하는 것은 자유에 대한 개념도, 자유를 감당할 만한 책임감도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모세는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사랑을 요구합니다. 믿음과 사랑은 동등한 인격체의 대등한 지위에서 오는 인격적 관계에서 나오는 태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자유, 자율성을 주시며 자원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노예라면 강압적이겠지만 하나님은 자유케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자유인의 자원하는 예배를 받으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광야라는 불평할 수 밖에 없는 환경은 먹고 마실 것이 해결되면 그 다음은 ‘나는 누구냐, 나의 정체성은 무엇이냐’를 깨닫고 고백하게 하는 곳인 것입니다. 이것이 광야의 시험이고 고백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조차도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실 때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어든’이라고 시험을 받으신 것입니다. 즉 정체성에 대한 시험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 증명되었고 그 책임을 다하셨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의 현장이 바로 출애굽한 광야입니다. 이제 우리에게 떨어진 과제, 시험은 나는 누구인가? 나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즉 택함받은 하나님의 성도, 교회인가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구원받은 백성으로, 쇼생크의 구원(출애굽)을 받아 가나안으로 들어가는(입가나안) 성도로서의 책임을 감당하는 신앙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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