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촌과 조카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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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촌과 조카이야기
정찬모 목사, 배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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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신보 기자 작성일22-05-12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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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찬모 목사, 배동교회


조선 왕조 제 7대 임금인 세조는 세종대왕의 둘째 아들이었다. 그는 조카 단종이 12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르자 흑심을 품고 난(계유정난)을 일으켜 스스로 왕위에 오른 인물이다. 

형식적으로는 단종이 삼촌이었던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순순히 물려주는 모양새였지만, 단종은 삼촌의 살기등등한 위협 앞에서 목숨만이라도 보전하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임금의 자리를 내준 것이었다. 

그러나 세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단종을 노산군으로 강등시키고 영월 청령포로 귀양을 보냈으며 나중에는 사약을 내려 보내 단종을 죽인 다음 그 시신마저 찾을 수 없도록 강물에 던져 버리게 했다. 

다행히 영월 관내 호장이었던 엄 홍도라는 사람이 몰래 단종의 시신을 강에서 건져서 묘를 씀으로 훗날 단종이 복권되면서 지금의 능(장릉)을 조성할 수 있게 되었다. 

엄 홍도는 단종의 시신을 거두는 자는 삼족을 멸한다는 어명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목숨을 걸고 단종의 시신을 거두어 암장함으로 단종이 복권될 때 충신으로 인정받아 순조 33년에 공조판서로 추증되고, 고종 13년(1876)에는 충의공이라는 시호까지 받았다.

권력에 눈이 멀었던 세조는 조카의 왕위를 뺏기 위해서 나라에 충성하던 김종서를 위시해서 수많은 인물들을 죽였다. 그는 후환을 없앤다는 명분으로 자기 형제였던 안평대군과 금성대군도 죽이고 단종 복위에 가담했던 사육신으로 일컬어지는 성삼문, 박팽년, 하위지, 이개, 유성원, 유응부(자결)와 그들의 먼 친척까지 다 죽이면서 부인들과 그들의 어린 자녀들은 모조리 다 노비로 전락시켰다. 한 마디로 삼족을 멸한 것이다.

그러나 세조는 그렇게 조카를 위시해서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아가면서 정권을 강탈했지만 그 역시 어린 두 아들을 병으로 먼저 떠나보내야 했고 본인도 온몸에 심한 피부병(나병)이 들어서 평생 고통을 받으면서 살다가 52살 나이에 죽고 말았다(1468). 

그는 13년간 임금의 자리에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를 왕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세조는 인의예지를 덕목으로 하고, 치국의 이념으로 삼은 유교의 나라에서 임금과 스승과 아버지는 하나라는 군사부일체의 가르침을 정면으로 깨면서까지 왕이 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어린 왕을 강제로 용상에서 끌어내리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한 것은, 아버지를 내치고 살해한 패륜과 동일한 짓이었기에 그는 주변 사람들만 인정하는 왕이었지 예를 아는 선비들과 백성들의 눈에는 천륜을 어긴 패역한 인간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때문에 세조는 당시 조선이 배척했던 불교에 귀의했고, 왕궁 안에까지 법당을 만들고 승려들까지 출입하게 했다. 아마도 밤마다 악몽에 시달리고 온몸에 피고름이 나오는 심한 피부질환이 별의별 짓을 다해도 낫지를 않자 두려움과 죄책감에 종교를 찾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도 들지만, 그는 끝내 그 병을 안고서 고통스럽게 살다가 인생을 끝내야 했다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패륜과 악독에 반기를 들고 단종의 복위를 꿈꾸다 발각되어 모진 고문 속에 죽어간 대신들이 묻힌 사육신의 묘에는 오늘도 사람들이 찾아와서, 충신은 불사이군이라는 것을 죽음으로써 보여준 저들의 충절에 예를 갖추어 추모하고 있으며, 간악한 숙부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어린 나이에 한을 품고 죽어갔던 청령포 단종의 유배지에도 단종을 기리는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애도하는 것을 보면서, 인생은 어떤 자리를 차지했느냐가 큰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살았느냐가 더 중요한 것임을 깨닫게 된다. 

그런데도 권력에 눈이 멀게 되면, 세조처럼 자기 피붙이까지도 서슴지 않고 죽이는 패륜을 저지를 수 있는 것이 인간이고, 그렇게 권력을 탐하여 사람으로서 해서는 안 될 짓을 하게 되면 끝내는 그것이 저주가 되어 자기와 자기 후손들에게까지 화가 미치는 결과를 가져오며, 생전에 아무리 자기가 가진 권력의 힘으로 자기의 과오를 정당화하고 미화해도 후세 사람들에 의해 내려지는 역사의 심판은 비켜갈 수 없다는 것을 세조의 삶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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