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시·거시세계는 동시에 경영되는 하나의 체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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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거시세계는 동시에 경영되는 하나의 체계
강용운 목사, 웨스트민스터장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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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신보 기자 작성일22-05-12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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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세계가 기반이 되지 않으면 ‘나’라는 거시세계를 이룰 수 없다. 심장은 각각이 뛰는 세포들(미시세계)이 유기체가 되어 평생 뛰는 펌프(거시세계)다. 실제 팔을 휘둘러 송판을 깨는 힘보다 팔 근육을 이루고 있는 세포 하나에 더 큰 에너지가 있다. 

세포를 쪼개어 원자를 발견하고 그것을 다시 쪼개어 핵과 전자, 더 깊이 들어가 힉스 입자(Higgs boson)를 보기 위해서는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에서 운영 중인 ‘입자가속기’와 같은 대형 강입자충돌기(LHC)가 필요했다. 작게 쪼개려 할수록 더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것은 작은 것일수록 힘이 장사라는 의미가 된다. 그것이 쪼개질 때(입자 충돌 시) 발생하는 열도 상상을 초월한다. 

이런 극미시 세계의 에너지를 가지고 있으면서 식어있는 것이 내 신체, 나아가 우주라는 거시세계다. 올해부터 CERN에서는, 10년 전 지금까지 인류가 발견한 가장 작은 입자였던 힉스를 또다시 쪼개어 보는 실험을 한다. 소위 ‘어둠의 물질’이라는 것도 보기를 원해서이다. 우주공간의 칠흑(漆黑) 같은 어둠은 빈공간이 아니라 무엇인가로 가득 채워져 있다는 것을 오래 전에 유추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모든 일은 우주의 존재원리와 근원을 찾기 위해 가정된 모형인 빅뱅이론을 증명하려는 지극히 인간적인 방법들이다. 작은 알갱이의 폭발이 거대 시공(時空)으로 확대되고 식어져 지금과 같은 우주가 존재하게 되었다는 가설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래서 작은 것을 이토록 파고드는 것이다. 환원주의(reductionism)의 일환이다.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는 동시적이다. 창조 순간에 섭리되지 않으면 존재도 운동도 할 수 없다. 그래서 하나님의 섭리를 ‘보존과 통치의 역사(work)’, 혹은 ‘계속 창조의 역사’라고도 한다. 소위 ‘無’란 이런 개념이다. 창조와 섭리가 없는 것 말이다. 

만약 창조와 섭리가 분리될 수 있다면, 창조일 경우 ‘스스로 있는 것’이 되고, 섭리일 경우 운동할 것이 없음에도 ‘스스로 운동한다’는 의미부여를 강제로 해야 한다. 그러나 아무 것도 없이 섭리할 곳이 어디이고, 섭리할 것이 없다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의미여서, 둘의 분리는 불가능하다. 

아무리 작은 것으로 파고 들어가 근원을 보고자 해도, 아무리 큰 세계로 나가 전체를 보려 해도 이 양편의 관망은 이루어질 수 없다. 극미시로 가면 ‘無’가 발견되어야 찾기를 멈출 수 있는 근원을 보는 것이고, 극거시로 가면 ‘무한’을 얻어야 전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의 입장에서는 무와 무한의 발견이란 아무 의미가 없다. 볼 수 없고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진리가 될 수 없다. 

이 양극은 영윈에서 하나로 만난다. 이것을 인간이 인식 가능한 표상으로 가정하려면 ‘점(點)’이 가장 타당하다. 이 말은 사실 빅뱅이론을 정면 반박하고 거절하는 표현이다. 폭발하는 점이 없어야(더 이상 발견되지 않는 것에 이르러야) 진실한 유(有)를 말할 수 있는데, 영원과 무한을 기하학이나 수학, 철학으로 저급화 시켜버렸다. 철학적 용어를 사용하자면 형아상학적인 ‘사실’을 형이하학적 ‘단위’로 바꿔버렸다는 이야기다. 

그리하여 점이 모여 선이 되고, 선이 모여 면이 되며, 면이 모여 입체가 된다는 모순으로 모든 진리를 단순화하였다. 이것의 공로는 사실을 없애버린 것이다. 허구를 사실화했다. 결코 사실에 이르지 못하도록 말이다. 과학이 무엇인가를 밝혀내어 갈수록 허구가 쌓여 무지에 무지를 더함으로 영윈한 소경이 되게 한다. 

회전하는 그림자가 없는 것, 처음이요 나중인 것, 시작과 끝인 것(계 22:13; 1:8)은, 이 유한한 세계에서 영원과 무한과 불변을 설명하는 것으로서,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언어로 가리키려는 ‘화살표’나 ‘커서(cursor)’ 같은 것이다. 이처럼 미시든 거시든 이 세상 전체로도 그것(정확히는 ‘그’)을 온전히 설명할 수 없다. 그럼에도 그것(그)을 아는 것이 세상과 나의 기원을 아는 유일한 길이요, 그후로 세상과 나를 설명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내 생각(이 세상으로 가득찬)과 거기(그)의 생각은 다르다(사 55:8-9). 그것(그)은 이 세상의 모든 원천이기 때문이다(계 21:6). 차원적으로도 아니며, ‘있는 것’(출 3:14)과 ‘있게 된 것’(사 41:4) 사이의 영원한 주종관계이다. 우리는 어디에 물어야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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