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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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의 의식
박병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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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신보 기자 작성일21-03-24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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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훈 목사, 유니온 교회



복음의 의식


뇌과학자들이 하는 실험 중에 눈먼 시력실험’(블라인드 익사이트)라는 것이 있답니다. 이것은 인간에게 있는 두 가지 보는 메카니즘을 연구하는 방식입니다. 인간이 보는 방식에는 의식적 메카니즘과 무의식적 메카니즘이 있다고 합니다. 의식적 메카니즘은 시각으로 무엇인지 알고 반응하는 것입니다. 반면 무의식적 메카니즘은 무엇인지 모르지만 본능적으로 반응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 시각장애인에게 뇌로 보내는 신호와 함께 파워포인트로 불빛을 움직이면 시각장애인이 의식하고 그대로 따라한다는 것입니다. 이 실험을 통해서 알수 있는 것은, 보고 경험한 것만으로 이해하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적 작동방식으로 지각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보는 것은 시각으로 보는 것만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고 지각할 수 있습니다. 실체 속에 있는 시각으로 볼 수 없는 비밀 같은 본질을 볼 수 있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성경에서는 본다는 것을 에이도(시력), 블레포(내용), 호라오(진리)로 구분해서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뇌과학자들의 연구는 성경을 증거하고 있는 것이 됩니다.

 

요한복음은 빛이 이 세상에 오셨는데 자기 백성조차도 그 빛을 알아보지 못 하더라는 탄식 끝에 그 빛을 알아보고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라고 외치는 세례 요한의 고백부터 시작이 됩니다. 그는 어떻게 그 초라한 주님을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알아볼 수 있었을까요? 소위 믿음의 눈이 열린 것입니다.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성경에 쓰인 비밀, 뮈스테리온이라는 용어에 대해서 알아야 합니다.

 

고대시대 때는 밀교라는 것이 많았습니다. 그 밀교라는 것은 비밀스러운 종교입니다. 예를 들어 이집트에 있었던 여신 이시스의 남편이자 아들인 오시리스를 섬기는 그러한 종교를 밀교라고 불렀습니다. 그 밀교 안에는 그 밀교의 멤버들에게만 밝혀지는 비밀스러운 가르침과 의식들이 있었는데 그 비밀스러운 가르침 때문에 그 종교를 밀교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불교에서도 일반사람들이 알 수 없는 비밀스러운 가르침을 밀교라 불렀습니다. 반면 누구나 다 알아들을 수 있는 대중적인 가르침은 현교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밀교의 특징은 범부들에게 아무렇게나 밝혀지지 않는 비밀스러운 것이라는 것입니다. 고대의 밀교에는 일반 사람들이 참석할 수 없는 의식이 있었습니다. 소위 헌신의식이라는 것이 행해집니다. 헌신의식같은 것은 그들이 섬기는 신의 수난과 영광을 그 내용으로 합니다. 기독신앙의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과 아주 흡사한 부분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 헌신의식이 행해지는 의식에 참석하기 위해서는 준비 기간과 입교라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 입교를 위해 의식을 치러야 합니다. 사람들은 그 의식을 치루는 동안에 밀교의 내용을 배우고, 금식하고 금욕하며, 신에게 기도하면서 지냅니다. 그리고 그 심화과정을 잘 마친 사람에게는 입교가 허락이 됩니다. 그렇게 입교가 되면 그들은 비로소 헌신의식이 행해지는 밀교의 의식에 참석하게 되는데 일단 입교를 통과하고 그 헌신의식에 참석한 사람들은 그 의식에 등장하는 신의 수난과 그 수난을 이겨낸 자신들의 신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이해하게 되고 그 신의 삶에 자신의 삶이 합일되어지는 느낌을 받았다고 합니다.

 

헬라 사람들은 그 밀교뮈스테리온이라고 불렀습니다. 고대시대 때 그러한 비밀스러운 밀교의 의미로 통용되던 그 뮈스테리온이라는 단어가 성경에도 여러 번 나옵니다. 그래서 성경 기자와 그 당시 사람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이 뮈스테리온, 신비, 비밀이라는 단어를 사용해서 예수 그리스도와 예수 그리스도를 설명하는 복음이 아무에게나 보여 지고 알려질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당시 고대 시대 사람들은 밀교의 뮈스테리온’, ‘비밀스러운 가르침을 이해하고, 그 밀교의 내용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들은 반드시 의식(제의: initiation)’의 단계를 통과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고대의 유대인들이 성경에서 이 뮈스테리온이라는 단어를 보게 되었을 때 성경과 성경이 이야기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를 알아듣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의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았던 것입니다. 그러면 기독신앙에서 복음의 비밀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게 되는 '의식'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그것은 회심, 거듭남일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그 뮈스테리온을 알아볼 수 있게끔 그 비밀의 지식을 전수하는 사람들을 가리켜 무스타고그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이 뮈스테리온이라는 단어가 담고 있는 내용을 알아야 할까요? 요한복음에 보면 아무도 주님을 알아보지 못했던 그 때에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보고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는 예수님이 담고 있는 복음의 비밀을 그가 알아보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세례 요한이 그의 제자들에게 무스타고그(비밀, 복음을 전하는 자)’의 역할을 하는 장면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종 사촌 형입니다. 아마도 어렸을 적부터 예수님을 잘 알았을 것입니다. 겨우 6개월 차이니까 예수님의 약한 모습과 인간됨을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그가 예수님을 가리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회심, 거듭남이라는 의식을 통과하여 하늘의 비밀, 뮈스테리온을 볼 수 있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의 모습을 정확하게 어린양과 연결을 시킬 수가 있었습니다. 어떻게 세례 요한은 가난한 사촌 나사렛의 목수 예수와 그의 머리에 성령이 임한 것과 어린양을 연결시킬 수 있었을까요? 어떻게 단 한 사람도 그 예수를 그리스도로 알아 볼 수 없었던 그 시대에, 세례 요한은 어떻게 그 분을 메시아로 알아볼 수 있었습니까? 분명 구약에는 하나님의 성령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임할 것과 어린양에 대한 이야기가 기술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야기들은 이 세상 사람들에게는 뮈스테리온, 비밀이었습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비밀이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그 이야기들을 모두 듣고 읽고 공부했지만 진의를 파악하지 못하고 곡해를 해서 정작 그것들이 상징하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연결 시킬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세례요한이 나사렛의 목수 예수를 그리스도와 성령이 임하는 것과 어린양을 정확하게 연결을 시켰던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회심한 교회, 성도만이 이 복음의 비밀을 믿음의 눈이라는 의식으로 깨닫고 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 또렸한 복음의 의식으로 오늘을 사는 살아 있는 교회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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