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림이 있는 성서 에세이33 - 가을의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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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이 있는 성서 에세이33 - 가을의 詩
글/그림 황학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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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신보 기자 작성일23-11-09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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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詩〉 1995. 황학만 作 


작품 《가을의 詩》는 젊었던 한때를 반추하게 한다. 어느 공휴일 문화행사가 끝나고 사람들이 운동장에 쏟아져 나올 때, 나는 정문 근처에 서 있었다. 그때 정문으로 빠져나가던 검은 승용차가 멈추더니, 중년 신사가 유리창을 내리고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에게 다가가자 그는 말없이 악수를 청하고는 운동장을 빠져나갔다. 

그를 다시 만났을 때는 뜻밖에도 청담 동 ‘유나화랑’에서 개인전 때였는데, 《가을의 詩》는 그때 그 부부의 소장품이 되었다. 

철학을 전공한 정치인 ‘제 정구’-. 그는 이재민을 시흥시로 이끌고 들어와서 언덕진 허허벌판에 보금자리를 만들어주고는 그곳에서 그들과 함께 살던 의인이었다. 마을 샛길은 좁고 포장이 안 된 탓에 비 오는 날이면 무척이도 질척이던 무허가 달동네였다. 그래도 그곳은 갈 곳 없는 이들에게 눈물겨운 보금자리였다. 그 실상이 보금자리라서 그렇게 부르기는 하나, 정식 명칭은 「복음자리」다.

의미가 판이해도 발음만은 같은 ‘보금자리’와 ‘복음자리’-. ‘복음자리’야말로 ‘참 보금자리’라는 의미에서 깨닫게 되는 것은, 그가 그리스도를 아는 신앙인이라는 점이다. 오갈 곳 없는 이들에게 보금자리를 마련해 주려 했던 그의 선행이 알려져 ‘막사이사이 상’이 수여되기도 했다. 그는 한참 더 일할 향년 54세에 이재민살이 세상에서 영원한 보금자리로 이주해 갔다.

작품 분위기는 아직도 여름인데, 상수리 잎사귀가 가을이 오고 있음을 알린다. 이 작품명이 《가을의 詩》였던 이유다. 판자 틈새로 멀리 내다보이는 푸른 하늘은 작가의 가슴에 숨어있는 영원한 세상. 꿈만 꾸다가 황망히 사라질 세상에서 ‘참 보금자리’는 빠끔히 보이는 저 하늘이었다. 가을은 우리 곁을 훌쩍 떠난 그가 생각나는 계절이다. 

오곡백과 무르익고 나뭇잎은 서둘러 붉고 노란빛으로 산야를 뒤덮는 가을. 그새 몇 해가 지났을까? 작품 《가을의 詩》는 주인이 바뀌었다. 바자회에 나온 그 작품은 평생 환자들을 치료하고 돌보던 의사 ‘김 창수’원장의 자택 한편 벽을 장식한 것이다. 계절이 수없이 바뀌고 많은 지인들이 세상을 떠났어도 더는 시들지 않는 낙엽과 빠끔히 보이는 하늘은 그곳에서도 여전히 푸르다.  

그는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 때까지 목에 청진기를 달고 헤일 수 없는 사람들의 병과 망가진 몸을 고쳤다. 수줍고 순박한 표정을 한 그도 이재민 곁에서 살다 간 ‘제 정구’가 그랬듯이 병자들 곁에서 사는 삶이 과연 즐겁기만 했을까?

시류를 등지고 돌아앉아 인생의 무상함 너머 영원한 세계를 그리던 내게도 인생이 즐겁지만은 않았다. 평생 낙엽 지는 세상 너머 영원함의 출구를 그리고자 했던 것은 이생의 자랑이 덧없기 때문이었다. 그래, 참 보금자리는 하늘아버지의 복음(福音)자리다. 제 정구도, 김 창수도 삶을 다해 그 보금자리 안내자로 살았던 것처럼, 나의 붓끝도 그랬다.

슬픈 이들, 아픈 이들, 강도 맞아 거지반 죽게 된 이들 곁에서 평생 이웃으로 살던 그들의 얼굴에는 ‘렘브란트의 그리스도’처럼 연민으로 그늘져있다. 잔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이들의 우수가 서린 것이다. 핏줄이 굵게 드러나도록 앙상해진 손은 검버섯이 피었어도 병자를 대하는 손끝은 섬세하기만 하고, 흰백의 캔버스 앞에서 붓을 쥔 고목껍질도 여전한 것은 할 일 많은 자의 고달픈 축복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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