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길목에서 일본을 느끼다
김정덕 목사, 시인, 영신중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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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신보 기자 작성일23-11-09 10:38본문
여행은 약간의 불안과 모호함이 뒤섞일 때 설렘이 극대화된다. 늘 서두르는 성격인 나는 하루 전에 송도에 있는 아들 오피스텔에 와서 자고 아침 일찍 인천공항 제1터미널 3층으로 갔다. 연령대가 50대에서 80대까지 스펙트럼이 넓은 우리 한크협 여행팀은 하나둘 단정한 옷차림으로 약속 장소에 모였다. 차림새에서 저마다 착실하게 살아왔음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다 같이 모바일 체크인을 하고 짐을 부친 후 ‘손수밥상’식당에서 육개장, 불고기비빔밥, 차돌된장찌개로 아침 식사를 했다.
티웨이(t’way) 항공으로 11시 40분에 인천 공항을 이륙했다. 예정시간 보다 40분이 딜레이 되었다. 비행기 안에서 ‘외국인 입국카드’를 작성하느라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 일본에서의 연락처, 한국 현주소 같은 것을 일본어나 영어로 적으라고 하니 슬쩍 부아가 났지만 양 회장님이 단톡방에 예시문을 올려놓아 다들 수월하게 작성할 수 있었다. 우리는 맑은 하늘을 가로질러 현해탄을 건너 오후 2시경에 일본 나리타공항에 도착했다. 까다로운 입국 절차를 거쳐 수하물을 찾아 밖으로 나가니 황바울 선교사님이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곧바로 회전초밥집인 ‘스시로’ 식당으로 가서 늦은 점심 식사를 했다. 칼의 문화로 대표되는 일본의 회 요리는 신선함이 매력이다. 계속 이어서 나오는 부드럽고 신선한 초밥을 실컷 먹었다. 시장했던 탓인지 후꾸시마 오염수니 방사선이니 하는 것은 안중에도 없었다. 맛있게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에도 시대의 전통이 남아있는 아사쿠사로 갔다. 손꼽히는 도쿄의 명소이지만 무료입장이라 수많은 관광객들로 붐볐다. 입구에서부터 양쪽으로 상점들이 즐비한 나카미세도리를 눈요기하며 지나갔다. 파아란 하늘과 붉은 사찰의 단청 아래로 붐비는 수많은 인파를 뚫고 마침내 센소지 본당 앞에 섰다. 바닥에 동전을 던지고 묵념으로 소원을 비는 사람들이 보였다.
일본의 종교는 신토교와 불교가 혼합되어 있다. 기독교는 고작 1%를 넘지 못한다. 그나마 예배에 참여하는 성도는 0.3%에 불과하다. 그들에게 종교는 절대구원이나 천국에 가는 진리가 아니라 하나의 취미 내지는 삶의 액세서리일 뿐이다. 그래서 일본의 전체 종교인 수를 합하면 인구수 1억2천 5백만을 훨씬 웃도는 수가 나온다. 그들은 스스로 자신이 신토교 신자이면서 동시에 불교 신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절대구원을 추구하는 기독교의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그들에게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개신교(1859년)보다 먼저 들어온 캐톨릭(1549년)에 대한 도쿠가와 막부의 기독교 금령 등, 일본정부의 무자비한 박해가 기독교 전파를 막은 큰 요인이기도 하다. 1889년에야 비로소 일본제국 헌법에서 신교의 자유가 인정되었다.
오래 전부터 일본인들의 일상생활에 뿌리내린 신토교에는 약 800만의 가미(神)가 있다. 천황도 신이고 바다도 신이고 사슴도 신이고 쥐도 신이다. 아사쿠사 근처에 채소인 무우를 제물로 바치는 사찰이 있다. 해독 작용을 하는 무우가 건강하게 하고 삶을 조화롭게 하므로 숭배한다는 것이다. 언젠가 오사카 동대사 근처 사슴공원에 갔을 때는 사슴에게 절하는 일본 사람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사슴이 그들의 조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 G20에 속한 선진국 일본이 어떻게 그런 무수한 미신을 섬길 수 있는지 좀처럼 이해할 수 없다. 일본은 아이러니하게도 문명국이면서 무수한 어둠의 영에 사로잡혀 있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