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과 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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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과 선교
조성호 목사, 대신세계선교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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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신보 기자 작성일21-07-22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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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호 목사, 대신세계선교회회장

최근의 세계가 겪고 있는 COVID-19 팬데믹(pandemic)은 시대적으로 많은 것을 변화시켰다. 특히 COVID-19 팬데믹은 선교의 기반을 흔들어 놓았다. 2020년 2월 이후 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COVID-19 팬데믹 확산을 막기 위해 국경을 통제하거나 일상적인 외부활동을 통제함으로 인하여 선교사역의 수행이 불가능한 상태에 놓이게 되었고, 많은 선교사들이 의료 시설이 열악한 선교지에서 고립될 수밖에 없는 경우도 발생하였으며, 선교사들 중에는 COVID-19에 감염되어 사망하기도 하였다.

어떤 기독교인들은 COVID-19 팬데믹을 말세의 징조로 보고(눅21:11), 또 어떤 이들은 인간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보기도 한다.(신28:15-21) 그러나 인류 역사를 돌이켜 보면 팬데믹이 오늘날에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란 것을 알 수 있다. 초기 기독교시대와 중세시대, 종교개혁 시대, 그리고 근대와 현대의 교회 시대에도 팬데믹은 교회와 기독교선교를 위협하였다. AD 165년 역병이 발생하여 로마와 그리스 그리고 이집트와 소아시아의 사망자 수는 약 500만 명에 달했고, AD 541∼542년 비잔틴 제국의 페스트로 사망자가 2,500만 명에 달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세 말인 AD 1326∼1353년에 발생한 흑사병으로 이전의 추정 세계인구 약 4억 5천만 명중 흑사병 이후 거의 1억 명의 인구가 감소한 것으로 알려졌고, 이는 유럽의 종교, 사회, 경제에 큰 영향을 주었다. 팬데믹은 인류 역사의 특정시기에 등장해서 교회와 기독교선교를 위협하여 왔던 것이다. 그러나 팬데믹이 기독교선교에 있어서 꼭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었으며, 팬데믹의 위기 속에서도 교회의 성장과 기독교선교는 지속되었고, 때로는 팬데믹이 선교의 강력한 추진력으로 작용하기도 하였다.

기독교가 공인된 313년까지 초기 기독교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은 많은 박해를 받았다. 그들은 순교의 위협 속에서 어떤 이들은 지하무덤(카타콤)에 숨어서 신앙 생활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박해가 심했던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복음이 급속히 확장되어 초기 기독교는 놀라운 성장을 하게 되었다. 소수에 불과하던 기독교인들은 AD 3세기 말 750만 명에 이르게 되었는데 이는 로마제국의 인구를 6000만 명 중 10%가 넘는 복음화 율을 보여 준다. 초기 기독교는 박해의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놀라운 성장을 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팬데믹과 관련이 되어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초기 기독교 시대의 팬데믹은 크게 두 차례 있었는데, AD 165년부터 약 15년 동안 페스트, 홍역, 천연두 등일 것으로 추정되는 질병들이 지속되었고, 로마제국의 인구 중 25∼35%가 사망하였다고 알려졌다. 두 번째는 AD 249부터 약 13년간 이민족과의 전쟁의 와중에 지속되었다. 그 당시 로마인들은 전염병에 걸린 환자를내 쫓았고, 사랑하는 친구라도 외면했으며, 로마의 이교사제들과 고위층은 도시로부터 도피하기에 급급하였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전염의 위험을 무릅쓰고 감염된 사람들을 사랑으로 돌보고 음식을 먹이고 소생 할 수 있도록 도움을 베풀었다. 자신들의 목숨을 아끼지 않고 병자들을 돌보았고 그들에게 필요한 생필품을 공급함으로써 이웃사랑을 실천하였다. 때로는 그러한 사랑의 실천의 대가로 죽음을 맞이하는 순교자적인 삶을 살았다. 그들은 그렇게 이웃사랑을 실천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유세비우스는 『교회사』에 기록하였다. 교회의 이웃 사랑의 실천은 교회안으로 제한되지 않고 모든 로마인들을 대상으로 행하여 졌기 때문에 로마인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자신이 전염병에 걸려서 죽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남을 돕는다는 것은 로마인들에게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에, 로마인들은 그리스도인들을 ‘파라볼라노이(위험을 무릅쓰는 자들)’이라 불렀다. 이 당시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파라볼라노이'라고 불렸다는 사실은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자기희생적 사랑을 실천한 공동체였는지를 잘 나타내주는 증거라 할 수 있다. 로마인들은 그리스도인의 자기희생적 사랑을 통하여 복음의 실체를 경험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그리스도인 공동체 내부에서는 사랑과 봉사로 신앙의 확신과 결속을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초기 기독교 그리스도인들의 사랑과 헌신은 기독교 선교에 큰 기여를 하였다고 학자들은 평가하고 있다.

종교개혁시대의 팬데믹은 주로 흑사병(페스트)으로 알려져 있다. 흑사병은 종교 개혁자들에게도 큰 고통을 주었는데 루터(Martin Luther)는 동생과 자녀를 흑사병으로 잃었고, 쯔빙글리(HuldrychZwingli)는 흑사병에 감염되어 죽을 고비를 넘겼다. 불링거(Heinrich Bullinger)는 아내와 딸들 그리고 사위들을 잃었다. 칼빈(Jean Calvin)도 어머니를 잃고, 그가 살고 목회했던 도시에서 팬데믹과 싸웠다. 유럽의 도시에 흑사병이 발생하면서 사람들은 환자들을 버리고 도피하였다.

그러나 종교개혁자들은 이러한 팬데믹의 위협 속에서도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였다. 루터가 독일의 비텐베르크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던 1513년경에 독일의 아우구스부르크에서 흑사병으로 약 1,800명이 사망하였으며, 다른 도시들에서도 흑사병이 유행하였다. 비텐베르크 대학의 학생들과 많은 시민들은 예나로 피신하였으나 루터는 비텐베르크를 떠나지 않고, 환자들을 돌보고, 장례를 치르고, 영혼의 위로자로서 역할을 다하였다. 루터는 가족과 함께 흑사병으로 버려져 죽어가는 환자를 본인의 집에 데려와 돌보기도 하였다. 목숨을 내어 놓는 순교적 정신으로 이웃사랑을 실천한 것이다. 그는 이웃이 위기 가운데 있을 때 외면하고 떠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며, 함께 이웃을 짐을 나누어지어야 하며, 이웃 곁에 있으면서 이웃을 도와야 한다고 함으로써 이웃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책무를 설명하였다. 루터는 전염병을 죄에 대한 하나님의 벌로 인식하기는 했지만, 전염병 걸린 이웃을 방치해서는 안 되며 최선을 다해 도와야 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루터는 전염병이 무서워 너무 쉽게 환자를 버리는 것이나 방역조치 없이 맹목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 모두를 경계하였고, 신앙 안에서 두려움을 극복하고 더욱 담대하고 용기 있게 이웃사랑을 실천할 것을 강조하였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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